여의도 국회 정문 앞 탈시설 자립 기자회견 열려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16명, 탈시설-자립생활 증언
국정감사 앞두고 국회에 탈시설 권리예산 요구

문석영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1일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시설 탈출 자유·독립 선언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탈시설 경험을 증언했다. 사진 복건우문석영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1일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시설 탈출 자유·독립 선언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탈시설 경험을 증언했다. 사진 복건우

“발달장애인은 약한 존재도, (무언가를) 못하는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직접 해 보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시설에서 나와 살 수 있도록 지원해주세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탈시설해서 못 살면 어떡하냐고 합니다. 그런데 비장애인도 다 잘 사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도 지역에서 살아갈 힘을 기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시설에서 나와 사는 것이 힘들고 지쳐도, 다시는 시설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문석영 씨는 31살의 발달장애인이다. 그는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서울 강동구 암사재활원에 맡겨졌다. 25년간 그곳에서 시설 생활을 했다. 부모님은 형제들 중 유일하게 문 씨를 시설에 보냈다. “장애가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갓난아기 때부터 시작한 단체생활은 쉽지 않았다. 모든 사생활을 조심해야 했고, 모든 선택권에 제한을 받았다. 다른 거주인과 옷이 섞여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조그마한 잘못과 실수에도 매를 맞았다. 말을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이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부당하게 느껴졌지만, 그때만 해도 시설 바깥의 삶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시설을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시설에서 같이 살던 동생의 탈시설을 지켜보면서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입고 싶은 옷을 사 입는 동생의 자유가 부러웠다. 시설에서 나갈 때 부모 동의가 필요하다는 규정이 의아했지만, 부모님을 설득해 2017년 지역사회로 나와 두 번째 삶을 시작했다. 그는 이제 발달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해 일하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문 씨는 이 같은 탈시설 경험담을 1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시설 탈출 자유·독립 선언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는 “활동지원서비스, 일자리와 집, 그리고 마음을 나눌 동료가 있다면 발달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

- 발달장애인은 시설을 ‘선택’하지 않았다

문 씨를 비롯한 16명의 발달장애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의 탈시설 경험담을 차례로 증언했다. 이들의 손에는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형형색색의 팻말이 들려 있었다. 여기에는 ‘발달장애인을 시설에 가두지 마라’ ‘(시설에 들어갈 때) 아무도 우리에게 물어본 적 없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 같은 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난해 정부가 탈시설로드맵을 발표한 뒤, 시설 운영자와 발달장애인 자녀를 시설에 보낸 부모들은 탈시설에 강하게 반대하며 나서고 있다. 현재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3만 명 중 80%가 발달장애인이다.

특히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소속 부모들은 “자기 의사표현이 어려운 중증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은 인권침해이자 사형선고”라며 “탈시설 욕구가 있는 사람만 탈시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시설을 장애인의 기본권이 아닌 주거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는 셈인데, 이는 장애를 이유로 한 시설 수용에 반대하는 국제사회의 흐름과 배치된다.

이들은 ‘우리가 탈시설 당사자’라고 주장하며 탈시설에 반대하지만, 정작 시설에 있는 발달장애인 자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날 발달장애인 16명이 국회 앞에 모여 탈시설 권리를 보장하라고 직접 목소리를 낸 이유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는 “부모와 국가가 발달장애인을 거주시설에 입소시키는 것은 이들을 양육과 돌봄의 대상으로만 간주해 장애인의 자립생활 권리를 무시하고 방치하는 일”이라며 “발달장애인이 시설에서 살기를 ‘선택’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들이 발달장애인의 시설 수용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들이 발달장애인의 시설 수용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의사와 무관하게 시설에 입소한 이들

탈시설이 ‘선택의 문제’라는 시설 운영자와 부모들은 마치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듯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상황에 따라 자의적이다. 장애인이 처음 시설에 들어가거나,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옮겨갈 때 이들에게 입소 의사를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립한 지 올해로 7년째인 발달장애인 박경인 씨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시설을 옮겨 다녀야 하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애초에 우리의 의사가 궁금하긴 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의사표현을 하기 어려운 중증발달장애인 대신 부모가 (자녀의 시설 입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데도 매년 내용도 모른 채 그룹홈 거주 여부를 결정하는 서류에 서명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영등포구에 거주 중인 중증장애인 허용수 씨는 부모와 함께 살다가 25살이 되던 해 시설에 들어갔다. 지난해 탈시설한 그는 10년간 시설에서 살며 ‘시설병’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시설병은 오랜 시설 생활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말한다. 그는 “시설에서는 시간표에 맞춰 살아야 했다. 어떤 결정을 내릴 필요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도 없어 편했지만 내가 정말로 원하던 삶은 아니었다”고 했다.

석암베데스다아동요양원(현 해맑은마음터)에서 살다 지역사회로 나온 김현아 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탈시설 이후 누릴 수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에 대해 증언했다. 사진 복건우석암베데스다아동요양원(현 해맑은마음터)에서 살다 지역사회로 나온 김현아 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탈시설 이후 누릴 수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에 대해 증언했다. 사진 복건우

- 탈시설 정책, 발달장애인과 탈시설 당사자가 주도해야

시설과 지역사회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어 온 발달장애인 16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탈시설 과정에 필요한 지원을 보장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탈시설은 깨지고 넘어지는 실패의 경험을 딛고 지역사회에서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발달장애인들이 요구하는 탈시설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석암베데스다아동요양원(현 해맑은마음터)에서 살다 지역사회로 나온 김현아 씨는 “탈시설을 하고 나니 직접 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적금과 청약을 알아보는 등 스스로 삶을 결정하고 계획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럼에도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주거, 활동지원서비스 등은 여전히 부족하다. 2017년 그룹홈에서 나온 박종경 씨는 “활동지원사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매년 활동지원심사에서 떨어진다. 왜 나만 떨어지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박종경 씨(사진 왼쪽)를 비롯한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들이 손팻말을 들어 보이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박종경 씨(사진 왼쪽)를 비롯한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들이 손팻말을 들어 보이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박종경 씨는 탈시설한 뒤 현재 지원주택에서 자립해 살아가고 있다. 지원주택은 주거와 생활지원서비스를 결합한 주거 모델로, 탈시설 장애인 지원의 주요 정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지원주택 역시 보완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그는 지원주택이 발달장애인을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간주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원주택과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어디 다녀왔는지 직원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해야 한다’였습니다. 지원주택에서 자유를 누릴 방법을 계속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자유를 누릴 수만 있다면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탈시설을 지원하는 제도가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보니, 탈시설을 희망해도 탈시설 과정이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소규모 시설인 그룹홈에서 살던 박경인 씨 역시 탈시설 지원에서 배제된 적이 있다. 그룹홈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인거주시설로 분류되지만, 서울시가 탈시설 지원 대상에서 그룹홈 거주자를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경인 씨는 “그룹홈에서 나올 때 서울시 탈시설 장애인 자립정착금을 받지 못했다”며 “자립하는 과정에서 내가 겪은 어려움을 앞으로 자립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겪지 않도록 탈시설 제도가 잘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설과 지역사회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어 온 16명의 발달장애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탈시설 과정에 필요한 지원을 보장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시설과 지역사회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어 온 16명의 발달장애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탈시설 과정에 필요한 지원을 보장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현재 탈시설지원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지자체 정책으로만 존재할 뿐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이 없다는 점이다. 이에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중앙정부 차원의 탈시설지원정책을 요구하며 국회에 계류 중인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했다. 탈시설지원법은 10년 내 모든 시설을 폐쇄하고, 장애인 복지의 패러다임을 ‘시설’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장애계에서 요구해 온 탈시설지원법과 예산은 지금껏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탈시설 관련 논의는 2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차 다뤄질 예정이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는 “탈시설 정책은 시설을 유지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시설에 사는 발달장애인과 탈시설 당사자가 주도해야 한다”며 “국회는 당사자 중심의 탈시설지원법을 조속히 제정하고 발달장애인 활동지원 예산을 충분히 늘려라”고 촉구했다.